프랑스 남부의 한 정신병원에 수감된 까미유 끌로델. 그곳에서 그녀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지도, 다시는 조각을 할 수도 없는 고립 상태에 놓여있다. 메마르고 적막한 풍경과 병원 환자들의 절규가 하루하루 숨을 조여오는 가운데 남동생 폴 끌로델의 방문 소식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왔던 동생과의 만남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 어긋나기만 하는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비운의 예술가 까미유 끌로델, 유난히 쓸쓸했던 1915년 겨울의 기억이 펼쳐진다.

BHIFF NOTE

비운의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이 51세가 된 1915년 정신병원에서의 사흘을 그린 영화다. 수십 년째 갇힌 탓에 밖에 나가서 조각을 하며 안정적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중년의 까미유를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다. 감독인 브루노 뒤몽은 무명 배우를 캐스팅하여 건조할 정도로 현실적인 자연주의 드라마를 만들다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스타배우와 작업했다.

동명의 <까미유 끌로델>이라는 영화는 브루노 누이땅 감독의 1989년 작으로 이자벨 아자니의 순수하고 광기 어린 연기로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끌로델 하면 이자벨 아자니라는 인상이 확고하게 관객에게 각인된 상황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끌로델 연기는 끌로델의 다른 면을 끌어올려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로도 큰 부담인데 이미 영화화되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맡기에는 압박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끌로델 역할을 먼저 제안한 이는 줄리엣 비노쉬이다. 비노쉬가 브루노 뒤몽에게 먼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의향을 밝힘으로써 영화가 기획되었다.

이자벨 아자니의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을 만나 조각가가 된 시점에서 지독한 이별을 경험한 후 정신병원에 수감 되기까지 끌로델의 열정 넘치는 젊은 나날을 낭만적으로 그렸다. 반면 줄리엣 비노쉬의 <까미유 끌로델>은 정신병원에서 단 3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중년이 된 끌로델이 겪었을 상처와 고독, 외로움과 낙담을 절절히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비노쉬는 완전히 새로운 끌로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정신병원에 수감 된 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지도, 조각을 할 수도 없는 고립된 상황에 놓인 끌로델에게 병원 환자들의 절규는 하루하루 숨을 조여오는 극심한 고통이다. 자신이 독살될 것이라는 의심으로 견디기 힘든 그녀에게 남동생 폴의 방문 소식은 삶의 유일한 희망이다. 랭보에 푹 빠져서 시인이 되었다가 근본주의적 신앙 교리에 몰두한 폴에게 누나 까미유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못한 죄인일 뿐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 겨울, 모든 것이 꽉 막힌 정신병동에서 유일한 희망을 꿈꾸던 천재적인 여성이 희망을 꺾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짧은 며칠 동안 줄리엣 비노쉬는 여러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슬픔과 절망, 분노와 저항, 희망와 기쁨, 그리고 마침내 받아들여야 하는 순응하는 이의 평화로움과 포기가 뒤섞인 복잡한 심정이 영화 내내 빼곡히 들어찬다.

실제 정신병동에서 환자들과 의사, 성직자들과 함께 촬영함으로써 뒤몽의 자연주의적 영화가실현되었다. 관객은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끔찍하게도 절망하는 끌로델의 내면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 많은 것을 구현해 내는 존재가 바로 대배우 비노쉬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 영화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8)의 순수함, <퐁네프의 연인들>(1991)의 광기, <세 가지 색: 블루>(1993)의 깊은 슬픔을 찬란하게 연기한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 총합이자 집대성 같은 느낌이다. 너무도 재능이 많아서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했으며 탈출의 몸부림이 모두 실패하고 남은 생을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끌로델을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비노쉬는 정확히 안 것 같다. 해맑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품은 오묘한 미소를 가진 자신이야말로 끌로드에 적역임을 말이다.

감상하기에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갇힌 자의 적막함을 환자들이 내는 비명과 스산한 풍경으로 담아내며 낯선 경험을 제공하는 도전적 작품이다. 불편한 시청각적 체험에서 끌로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고, 성모 마리아를 향해 기도하며 절망적으로 평화를 갈구한 비정상의 시대를 산 한 선구적 여성의 고귀함으로 인해 가슴이 아려올 것이다. 줄리엣 비노쉬라는 이름 대신 까미유 끌로델의 시간으로 이끌리는 경험은 영화예술이 주는 기쁨이다. _정민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