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사업으로 말라가는 갯벌에서, 시민과학자 동필은 멸종위기 새들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는 오래전 보았던 도요새의 군무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영화감독 윤은 동필의 이야기를 듣고 매혹이 전이되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과거에 포기했던 영화를 다시 만들기 시작하며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연출의도

이 영화는 국책사업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기록’하는 행위로 저항하는 시민들의 이야기이자,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요새의 군무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가 느꼈을 경이로움과 그리움, 상실감이 나를 압도했다.

그것은 내가 7년 동안, 이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기억할 아름다움이 점점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기록한다. 기억과 기록의 힘을 믿으며.


BHIFF NOTE

<수라>는 2001년 동물원에 갇힌 새끼 호랑이의 아픔을 담은 <작별>(2001)을 시작으로 약 20년간 주로 생태와 환경과 관련된 문제를 기록해온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스트 황윤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다. 그의 세계는 로드킬을 당하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고민했던 <어느 날 그 길에서>(2006)와 식탁 위 돈가스로부터 음식과 생명의 윤리, 공장식 축산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담아낸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을 거치면서 한층 깊어지고 원숙해졌다. 그의 여섯 번째 다큐멘터리 <수라>는 그의 이런 경험과 철학이 집약된 수작이다.

황윤 감독은 2006년 새만금 갯벌을 촬영하던 중, 잘 알고 지내던 새만금 주민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 충격으로 촬영을 멈췄다. 이후 새만금에 살면서 평생동안 새만금을 기록했던 선배 이강길 감독마저 세상을 떠나자, 새만금은 황윤 감독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랬던 감독이 남편을 따라 2014년 전라북도 군산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8년 만에 마주한 새만금의 풍경은 감독의 예상과 달랐다. 이미 공사가 끝났을 것 같았던 새만금은 놀랍게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간척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2006년 마지막 물막이 공사 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줄 알았던 갯벌은 여전히 멸종위기 1급, 국제보호종인 저어새를 비롯한 환경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새들과 다양한 생명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명의 터전으로서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황윤 감독은 그곳에서 2003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매월 갯벌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존재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오동필 조사단장을 알게 된다. 동아리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닌 이 사람들이 궁금해진 감독은 이들을 만나고 촬영하기 시작한다.

황윤 감독의 1인칭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수라>는 새만금 간척 사업과 반대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실패한 투쟁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갯벌을 지켜온 사람들의 진심과 간절한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그리고 수라 갯벌을 중심으로 간척 사업 전후의 새만금 갯벌의 생태를 기록해나간다. 이 7년간의 기록은 국책사업의 폭력과 실패한 투쟁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끊기지 않고 계속되어 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과 오동필 단장의 진심을 온전히 담아내는 한편, 이를 통해 펄떡거리는 생명들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수라 갯벌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감동은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다큐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엄하고 놀라운 도요새의 군무를 보면서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때 느껴지지만, 그보다 더 크고 깊은 감동은 오동필 단장과 그의 아들 승준씨의 진심을 통해 전해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로 끝나버린 투쟁의 결과를 슬퍼하고, 갯벌의 아름다움, 도요새의 군무를 보며 느꼈던 감동을 말할 때 그의 눈빛, 표정, 말투, 몸짓에서 묻어나는 그의 진심은 도요새의 군무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동필 씨의 아들 승준 씨가 천연기념물인 쇠검은머리쑥새의 소리를 담기 위해 아버지를 대신하여 갯벌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보게 된다. 이 가슴 먹먹한 7년의 기록은 한없이 슬프고,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어쩔 도리 없이 감동적이다. _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