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진주는 자신의 영화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촬영장소인 카페가 갑자기 공사를 하게 되어 막막해진다. 다행히 50년 전통의 카페 '삼각지 다방'을 선배의 소개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곳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창작활동과 공연, 모임을 하는 곳으로 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진주는 이곳 삼각지 다방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곳 삼각지 다방도 곧 공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쪽에서는 도시개발, 현대화라는 이유로 옛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지어가고 한쪽에서는 레트로라는 명목으로 옛것을 다시 만들어가는 아이러니한 개발 문화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개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와 사람이 공간에 가지는 마음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사라지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록

정민아 -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진주’는 아빠와의 추억을 담은 자전적인 영화를 준비한다. 그런데 촬영하기로 한 카페가 갑자기 공사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곤란함에 빠진다. 그녀는 선배의 소개로 도시 ‘진주’ 일대의 카페를 찾아줄 지인을 알게 되는데, 그는 세련되고 힙한 진주의 명물 카페들을 진주에게 보여준다. 감독 진주의 도시 '진주'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진주는 전통과 모던이 조화를 이루는 도회적인 카페를 원한 게 아니라서 그녀의 계획은 자꾸 미뤄진다. 옛날 아빠와 함께 갔던 진짜 다방스러운 다방, 낡고 촌스러워도 옛 정취가 풍겨 나오는 사람냄새 나는 다방을 찾고 있던 것이다. 어느 날 진주의 눈에 재래시장 건물 한 곳에 위치한 50년 전통의 ‘삼각지 다방’이 들어온다. 그녀는 한눈에 바로 그곳임을 알아차리고 조사에 돌입하지만, 다방주인은 이곳을 팔기로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또다시 계획이 무산되나 싶던 찰나, 삼각지 다방은 지역 예술가들이 연극, 그림, 문학 등 창작활동 모임을 하는 오래된 터전이었던 바, 지역 예술가들은 자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다방의 공사를 막기로 결정한다. 진주도 이해관계가 있는 터라 이들과 행동을 함께 한다. 이들은 다방주인을 설득하고, 지역 문화유산 지정을 노리는 방법을 찾아본다. 결국 문화예술인은 예술을 행동의 도구로 해야 하는 법. 연극인은 공연을 하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인은 노래를 만들어 온몸으로 삼각지 다방의 사라짐에 저항한다.

애초에 진주는 영화 촬영이 목적이라서 다방을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의 목적을 다시 생각한다. 영화는 기록이다. 사라지는 공간, 사라지는 사람, 사라지는 정취, 사라지는 풍경이 영화에 담긴다. 아빠와의 추억, 곧 없어질 공간, 그로 인해 차츰 달라질 풍경, 영화는 이것을 담아서 남기고 추억하게 한다. 이제 감독 진주가 목적을 가지고 향한 도시 진주가 아니다. 오래된 것이 새것을 품는 도시 진주가 걷는 사람 진주를 끌어안는 것이다.

영화는 경남문화창업협동조합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연출을 하고 각본을 쓴 김록경 감독은 배우를 겸업하는 감독으로 2020년 <잔칫날>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국영화 부문 작품상 등 4개의 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장편 데뷔전을 치뤘다. 장례식과 잔칫집이라는 대비되는 장소를 오가며 생계와 애도를 정신없이 치르는 주인공의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여정을 통해 인생과 세상사의 아이러니를 훌륭하게 담은 감독이라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진주의 진주>는 규모가 작은 지역 영화지만, 영화찍기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인으로서 자각하게 되는 공간의 의미를 묻는 메타 영화다. 신구가 어우러지는 진주라는 지역 소도시의 정겨운 풍경이 카메라에 세심하게 담긴다. 기록된 공간은 변하고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진주가 아빠와의 추억을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공간이 없어져도 거기에 있던 사람에 대한 아련한 추억은 영원히 마음속에 남듯이 영화도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그 모든 영화들은 당대를 기억하는 충실한 문화유산이다. 감독 진주는 삼각지 다방 사건을 경험하면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기억 속 아빠는 컬러영화가 주는 생생함처럼 눈을 감아도 화려하게 채색된 채 남아있다.

<진주의 진주>는 지역 문화예술 지원으로 존재감을 다지는 로컬영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로케이션이 필수인 영화에서 공간이 던지는 깨달음이라는 점에서 영화인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도가 많은 곳에서 지속되길 바라며 진정한 생태순환적 영화로서 응원한다.